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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0일 챌린지 - 1일 1편 3000자 블로그 포스팅 시리즈의 다섯 번째 글입니다.)

 

Day 005. 소설에서 배울 수 있는 것 (feat. 경우 작가님)

 

가끔씩 너무너무 재밌는 웹소설을 발견하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 금요일에 웹소설 작가 경우 님의 소설을 접했다. '살인의 기억'이라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남자 아이다. 보육원에서 자란 이 아이는 어떤 대상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악의를 느낄 때, 그 대상의 뇌리에 가장 깊게 박힌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특별한 능력 덕에 어린 시절부터 얽히게 된 경찰 간부 '강혁'. 그의 원조 덕분에 주인공 '도경'은 경찰대학에 진학해 경찰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갑자기 이 소설 줄거리를 왜 설명했는지 말하고 싶다. 사실 얼마 전 독서의 의미에 대해 '책을 읽고 난 뒤에 뭔가 실천할 거리가 생겨야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문학 독서에서는, 특히 웹소설 읽기에서는 배울 수 있는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것은 섣부른 단정이었다. 문학은 책을 읽으면서 혹은 책을 읽고 난 뒤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화두'를 제시해준다.

 

비트겐슈타인의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말. 그는 인생을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것' 덕분이라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문학은 이 말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개념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 보여주는 그런 것이 아닐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경우 작가가 쓴 소설 '살인의 기억' 뿐만 아니라 '화룡', '피아니스트의 마을' 등의 다른 작품에서도 캐릭터 간의 대화에서 정말 기억해두고 곱씹어 봐야 하는 그런 대화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살인의 기억'에서 주인공 '도경'에게 후견인 '강혁'이 한 말에서,

도경아, 매일 출근해서 기계적으로 일하는 곳은 직장일 뿐이야. 업(業)이란 말은 내 삶을 걸고 하는 일이다.
단순히 전문 기술을 가지고 돈을 번다는 의미의 직업이 아니야. 업(業)이란 한자는 그런 곳에 쓰는 것이 아니야.

 

모구리는 이 부분을 읽다 큰 충격을 받았다. 모구리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만나면, "제 직업은 ~입니다."라는 말 대신에 "저는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고요, 어디서 직장 다니고 있는, 직장인입니다."라고 본인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 그저 아무런 의미 없이, 월급을 받기 위해서 다니는 회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또 '강혁'이 한 다른 말, 조직 생활을 처음 시작해 서툰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 '도경'에게

 

쯧쯧, 인마. 진짜 에이스는 말이다. 지 혼자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팀 전체를 날게 하는 거다.
누가 절 에이스래요?
에이스지, 어? 강력계 발령받자마자 이만한 사건을 해결했는데.
됐어요, 이번엔 운이 좋았어요.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근데 보고서 쓸 때 설명하지 못할 부분이 너무 많아. (주인공의 특별한 능력 때문에)
어쩌면 돼요?
설명 불가능한 부분을 전부 동료가 한 걸로 넘겨 버려. 그럼 너도 설명하기 편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이해가 되지.
동료가 안 한 걸 했다고 써요? 그랬다가 동료들이 반발하면 어째요?
(중략, 인사 고과에 목숨을 거는 직장인의 비애 설명.)
원래 내가 올라가려면 윗사람을 올려야 되는 거다. 그래야 그 빈자리가 네 것이 될 확률이 생기는 거야.
팀장이 인마. 그냥 때 되면 시켜주는 자리인 줄 아냐? 팀원들이 널 믿고 따른다는 걸 상부가 알아야 돼. 이끌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간다. 알았어?

 

지금은 직위가 연구원일 뿐인 모구리도, 연차가 쌓이면 어느 순간 직책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못 받을 수도 있고.

 

하지만 '이끌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간다.'는 이 말을 들은 덕분에 어쩌면 10년 후 모구리는 직책을 갖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구리는 동료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이 물음에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하는 순간 정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 같다.

 

***

 

웹소설 작가들은 연재하고 있는 소설을 완결 짓게 되면, 완결 후기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쓰면서 느꼈던 소회들을 풀어놓는다.

 

'화룡'의 완결 기념 후기에서 경우 작가님의 '직업윤리'에 대해 감명을 받았다.

 

제가 살며 지키려고 하는 것은 사실 명언이라고 보기는 좀 그렇지만... 영화 스타워즈의 대사였어요. 스타워즈에 보면 '요다'라는 제다이의 스승이 나오는데 그분이 이런 말을 했답니다. "한다, 안 한다만 있을 뿐. 해본다라는 말은 없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저는 그게 어때서? 일단 부딪혀 보자,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 어때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니 누군가 이거 할 수 있어요?라고 물었을 때 해볼게요 라는 답을 하는 순간 벌써 저는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둔 것이더군요. 일단 해볼게,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어.라는 뜻이 내포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서비스 중인 플랫폼 회사가 전체 휴가를 가거나, 혹은 긴 연휴에 무리한 일정으로 원고를 요청해도 단 한 번도 휴재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수고해주시는 편집자님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할 수 있겠냐고 물어오실 때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사실 너무 무리해서 후회한 적도 있지만) 그리고 매번, 결국은 해냈습니다.

우리 독자님들도 인생을 사실 때 마음에 품고 있는 명언 하나쯤 가지시길 빌어 봅니다. 참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모구리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모구리의 삶은 '해본다'라는 말로 점철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물음에 수없이 답한 '네~ 해볼게요'란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이었을까.

 

사실, 다른 곳에서는 '해볼게요'라는 말을 사용해도 됐다. 그것이 도의적으로 좀 별로다 라는 말을 들을 순 있어도 정말 책 잡을 수는 없는 그런 것이기에.

 

하지만 적어도 직장에서는 누군가의 요청에 '해볼게요'라는 말을 하면 안 됐다. 직장에서 직장인이 하는 모든 활동의 전제는 '돈을 받았으면 무조건 돈값을 한다.'이니까.

 

정말 아팠다. 모구리가 프로인 척하는 아마추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그리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받는 돈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품게 됐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것은 지금 당장은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사람을 옭아매는 사슬이 된다고 생각한다.

 

 

***

 

경우 작가님의 소설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포브스 선정, 읽으면서 캡처가 아쉬운 웹소설 1위.

 

웹소설은 전자책의 일종으로 저작권 보호 때문에 화면 캡처가 안 된다. 그래서 일일이 옮겨 적어야 한다... 그래서 항상 갈등에 빠진다. 소설의 다음 장면을 빠르게 읽고 싶은 마음과, 읽는 지금 기록해두고 넘어가야 한다는 마음이.

 

경험상 그때 기록해두지 않으면, 어느 부분이었는지 망각해버려 다시 찾을 수 없었고, 또 시간이 더 지나면 그 부분에서 무엇을 느꼈는지조차 까먹어버려 그냥 영원히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게 되더라.

 

영감은 그 순간 찰나처럼 스치는 것이라,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원히 잊혀 버린다.

 

경우 님의 소설은 정말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다 줘서 참 좋다. 그분의 소설은 모두 읽을 생각이다.

 

지금까지 읽은 것. '살인의 기억', '화룡', '피아니스트의 마을'.

앞으로 읽을 것. '살인마의 인터뷰', '환상귀담'.

 

오늘 하루도 행복하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모구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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